2007.06.02 00:57 게으른 날의 독서

오라 오너라, 죽음이여.

슬픈 삼나무 관 속에 날 뉘어다오.

사라져라 사라져 다오, 호흡이여.

매정한 처녀의 손길이 이 목숨을 빼앗아갔네.

준비해 주오, 주목나무 장식을 한 하얀 수의를.

나같이 진정한 사랑을 위한 죽음은 이 세상에 다시는 없으리라.

꽃 한 송이 단 하나의 꽃 한 송이도 뿌리지 말아다오,

검은 나의 관 위에.

친구 하나, 단 한 명의 친구도 찾지 말아다오,

내 뼈가 흙 속에 묻힐 때.

천 가지 만 가지 탄식에서 구하고

혹시 참사랑의 연인이 내 무덤을 찾아 서럽게 우는 일이 없도록

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에 묻어다오.

- 「십이야」 중 어릿광대 페스테의 노래



광대 : 말씀 한번 제대로 했네요. 요즘 세상이 그래요. 머리 좀 돌아가는 친구에게 걸리면 같은 말도 장갑처럼 된단 말이에요. 마치 안팎은 간단히 뒤집어 끼는 것처럼 홱 말이 바뀌어버리죠.

바이올라 : 정말 그렇네. 말을 갖고 농탕을 치기로 하면 멋대로 변덕스럽기 짝이 없어지지.

광대 : 그럼 내 누이동생도 이름을 안 지어주는 걸 그랬네요.

바이올라 : 그건 왜?

광대 : 아, 그거야 이름도 말이 아니예요? 그러니 이름을 갖고 장난을 치면 누이도 변덕을 부려 화냥질을 할지도 모르잖아요. 참말로 말이란 게 타락해서 아주 파렴치한 것이 돼버렸어요.

- 「십이야」 중 바이올라와 광대의 대화


올리비아 : 아! 저 사람 입에서 나오는 어떤 경멸이나 분노의 말조차도 아름답게만 들리는구나. 감추고 싶은 사랑의 감정은 살인의 죄보다 신속하게 드러나니 사랑을 하면 한밤중도 대낮과 같단 말인가.

- 「십이야」 중 올리비아의 고백

「십이야」. 단순히 「She's the man」이라는 영화의 원작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지만, 셰익스피어의 변화무쌍하고 깊은 문체에 새삼 반해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곱씹어가며 다시 훑어보고 있다.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고등학교 때 「오셀로」를 읽은 게 마지막이었으니, 다시 접한 게 거의 10년만인가. 한밤 중 이불 속에서 「로미오와 줄리엣」의 절절한 대사를 눈물을 철철 흘려가며 읽어내렸는데, 지금 다시 읽으면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. 지금의 내가 「십이야」 속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어릿광대의 조소어린 대사에 더 감명받고 있듯이. 문장은 그대로이지만,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순 없을테니.

posted by 무이 sweetmui